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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즐기는 생활

연극 마우스피스 보고 온 후기, 내가 지금 내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

by 별난방 202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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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8> 두 번째 작품 <연극 마우스피스>

by. Kieran Hurley

 

궁핍한 세대를 위한 대변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이야기를 다룰 권리는 누구한테 있는가? 

소비하는 관객들은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본다고 해야 할까?

연극 마우스피스 (MOUTHPIECE)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100분
2020.07.11 ~ 2020.09.06
R석 55,000원
S석 40,000원

김여진, 김신록, 장률, 이휘종

 

연극 마우스피스가 공연이 되고 있는 아트원씨어터 2관은 혜화역 2번 출구로 나가서 마로니에 공원 길로 쭉 올라가다 CU앞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보인다. 연극열전에서 올리는 연극은 대부분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연극 렁스때와 같은 공연장이다. 외부 Ticket Box에서 티켓을 찾은 뒤에 계단을 한 층 올라가면 로비가 있다. 로비에서는 프로그램 북을 살 수 있고, 재관람 카드 적립을 할 수 있다.

재관람 카드는 2회 차부터 적립 가능

프로그램 북 내용이 정말 알차기 때문에 공연 배경이나 용어를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구매해 읽어 보는 걸 추천한다.

<오늘의 캐스팅>

 

 

리비 - 김신록 "저 위에 올라가 있는 건 당신의 피와 살입니다. 당신의 심장, 영혼이죠."

데클란 - 이휘종 "입! 마우스피스! 진짜 작품처럼 제목을 붙여준 거죠!"

<시놉시스>

혼자만의 공간인 솔즈베리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던 데클란은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리비를 구한다. 같은 도시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두 사람. 데클란에게서 예술적 재능과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발견한 리비는,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 지고, 데클란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는 리비에게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데클란의 목소리로 시작되어 리비의 글로 완성되어 가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공연장 자리 후기>

아크원씨어터 2관은 항상 어느 자리를 앉아도 만족할 만한 공연을 보고 나왔다. 사이드로 갈수록 한 배우의 등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리비의 공간은 왼쪽에 데클란의 공간은 오른쪽으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좀 더 집중하고 싶은지에 따라 자리를 결정하면 될 것 같다.

<공연 후기>

격렬한 흥분 속에 공연을 보고 나왔다.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아 미쳤다. 진짜 이건 몰입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장난 아닌 공연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공연장을 나서는 마스크는 바꿔 끼워야 할 정도로 흠뻑 젖어 버렸고, 콧물이 가득한 코 때문에 멍멍했다. 

연극 마우스피스처럼 관객이 꼭꼭 꼭 필수라고 느끼게 하는 공연은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장에 데클란의 동의 없이 올려진 리비의 연극 마우스피스가 올라가고, 데클란은 그 공연장에서 리비를 만나기 위해 가는 데 순간 관객석의 조명도 살짝 밝아지면서 관객이 실제로 그 공연장에 데클란과 함께 앉아 있고, 한 명의 관객, 평론가, 기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거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유 모를 눈물이 계속 흘렀는데 이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내가 왜 그렇게 울었을까? 명확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데클란이 리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그걸 쓰는 걸 동의를 했을 때는 리비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우한 자신의 삶에서 지켜야 할 동생 '시안' 말고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닿고 내 손이 닿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비는 처음에는 데클란의 순수한 열정 (예술가로서)에 반해 그의 세상을 넓힐 수 있도록 도움을 줬을지는 몰라도 점점 그냥 데클란의 이야기를 자신이 대변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자신은 작가니까.

리비가 데클란에게 성적으로 다가갔던 순간. 그건 두 사람의 나이차를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정말 용납 안 되는 행위임에는 사실이다. 이 부분이 조금 불편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후의 리비의 대처법이 조금 더 냉정해서 데클란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저 나이 때의 여성이라면 연락을 다 피하고 싶을 것 같기는 하다. 스스로에게 자책감도 많이 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기분과 입맛에 맞게 상대방을 조종하려고 하는 게 맞는 건 아니라는 거다. 리비가 '난 그때 했던 동의를 철회하는 거야.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그만.' 하며 데클란의 입을 막는데, 아니 데클란은 그럼 어디서 그 얘기를 하지...? 대변인이 되어 주는 거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데클란의 입을 또 막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비의 결말에 반대하고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데클란을 보면서 그래 그렇게 외쳐 너의 이야기잖아 하며 내적으로 응원하며 눈물이 났다. 아... 이거구나 난 불합리한 현실과 내용에 답답함을 같이 느끼고 있는 거구나...

이게 뭘까,,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이야기를 쓰는 건 뭐가 진실이고 가짜일까? 난 리비의 이야기가 메인이고 (진실) 데클란의 모습은 본인이 외치기를 바랐던 모습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데클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리비와 다른 결말을 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뭐가 정답인지는 답이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극을 봐도 해석은 굉장히 달라질 것 같았다. 내가 본 대로 해석을 한다면 결국 바뀌지 않은 현실에 더 좌절할 것 같지만... 데클란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마지막 그 한마디가 생각난다. "그리고 암전" 결국 어떻게든 극이 끝나기는 하는구나. 아무리 극 속에서 데클란이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외치더라도 끝은 나네... 그리고 아무 생각도 안드는데 난 자동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런 기분은 극을 보면서 굉장히 오래간만이었다.

연극 그것도 불행 포르노를 주제로 쓰인 극은 본다는 건 무엇일까 (실제로 프로그램북에 보면 NGO 후원금 관련해 이 이야기가 나오는 데 극을 보고 나오니 더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난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을까? 그 이야기 속 누군가가 동의를 한 건 맞을까? 동의를 철회하지는 않았을까? 정말 모르겠다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난 때때로 내가 하는 '보는' 소비가 올바른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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